퇴직 후 아내와 다시 연애를 시작한 이야기
살면서 가장 오래 함께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아내라고 말합니다.
젊은 시절 만나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낳아 키우고, 먹고사는 문제로 함께 고생하며 어느새 60대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60년 만에 다시 손을 잡아서 이해해 볼께요.

돌이켜보면 아내는 제 인생의 절반이 아니라 거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가장 당연한 사람처럼 여기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결혼 초에는 손도 자주 잡고, 함께 시장을 가도 웃음이 많았습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는 길이 설렜고, 주말이면 어디든 함께 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태어나고, 생활이 바빠지고, 직장 생활이 길어지면서 사랑보다 책임이 먼저가 되었습니다.
아내는 아이들을 키우느라 바빴고, 저는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바빴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부부라기보다 가족이 되었고, 가족이라기보다 생활 공동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퇴직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예상하지 못했던 인생 2막이 시작되었습니다.
퇴직 후 처음 알게 된 아내의 빈자리
퇴직 전에는 아침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 귀가하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퇴직하면 편할 줄 알았습니다.
아침에 늦잠도 자고, 여행도 다니고, 친구들도 자주 만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습니다.
출근하지 않는 첫 월요일 아침.
알람도 울리지 않았고, 급하게 준비할 일도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자 묘한 허전함이 찾아왔습니다.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었습니다.
TV를 보다가도 재미가 없었고, 혼자 카페에 가도 심심했습니다.
그때 문득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아내가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해왔는지를 말입니다.
아내는 늘 제 곁에 있었습니다.
아침밥을 챙겨주고.
옷을 정리해 주고.
건강을 걱정해 주고.
제가 힘들 때 가장 먼저 알아봐 주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장을 보러 간다고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다녀와" 한마디 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따라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나도 같이 갈까?"
아내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오늘 무슨 바람이 불었어?"
그날 우리는 동네 시장을 함께 걸었습니다.
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평범한 시간이었지만 이상하게 즐거웠습니다.
마치 결혼 전 연애하던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습니다.
60년 만에 다시 시작된 두 번째 신혼
퇴직 후 가장 달라진 것은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시간이 지루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시간을 아내와 함께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산책.
동네 카페.
근교 여행.
맛집 탐방.
예전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하지 못했던 일들입니다.
어느 봄날 벚꽃이 피던 날이었습니다.
아내와 강변 산책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벚꽃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아내가 말했습니다.
"우리 젊을 때는 이런 데 올 시간도 없었지?"
그 말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돈을 벌고 아이를 키우느라 우리는 늘 바빴습니다.
행복해지기 위해 열심히 살았는데 정작 행복을 즐길 시간은 부족했습니다.
그날 저는 조심스럽게 아내 손을 잡았습니다.
솔직히 조금 어색했습니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았지만 손을 잡는 것은 오랜만이었습니다.
아내도 처음에는 놀란 눈치였습니다.
하지만 이내 웃으며 손을 꼭 잡아 주었습니다.
그 순간 이상하게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손 하나 잡았을 뿐인데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함께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여행 계획을 세웠습니다.
함께 맛집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더 많은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두 번째 신혼이라고 부릅니다.
젊을 때의 사랑이 설렘이었다면 지금의 사랑은 감사함입니다.
함께 늙어간다는 것의 의미를 배우다
60대가 되니 건강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됩니다.
혈압.
당뇨.
관절.
건강검진.
예전에는 관심도 없던 이야기들입니다.
어느 날 건강검진 결과를 받으러 갔을 때였습니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지만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말했습니다.
"우리 건강하게 오래 살자."
그 짧은 말이 참 크게 들렸습니다.
젊을 때는 성공이 중요했습니다.
돈도 중요했습니다.
승진도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함께 밥을 먹는 것.
함께 여행을 가는 것.
함께 산책을 하는 것.
그런 평범한 시간이 더 소중합니다.
저는 요즘 아내와 여행을 자주 다닙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됩니다.
근처 바다를 보고 오는 날도 있고,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날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함께라는 사실입니다.
예전에는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미안하다는 말도 합니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도 조금씩 하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랑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표현이 줄어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늦게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이라도 표현하려고 합니다.
아내가 웃는 모습을 더 많이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은퇴를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장은 끝났지만 인생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제야 가장 소중한 사람과 함께할 시간이 생겼습니다.
저는 퇴직 후 아내와 다시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함께 걷고.
함께 웃고.
함께 커피를 마시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평범한 시간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만약 지금 이 글을 읽는 분이 저와 비슷한 나이라면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오늘 아내의 손을 한번 잡아 보세요.
오늘 남편에게 먼저 말을 걸어 보세요.
젊은 시절의 사랑은 돌아오지 않을지 몰라도, 더 깊고 따뜻한 사랑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60년 만에 다시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손을 앞으로도 오래 놓지 않을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