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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아버지를 이해했습니다

by 천지인입니다 2026. 6. 6.

부모를 떠나보내고 깨달은 것들

살면서 가장 늦게 이해하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부모님입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그저 당연히 곁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침이면 밥을 차려주고, 학교에 보내주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은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아버지를 이해 한다는것을 이야기 해 볼려고 합니다.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아버지를 이해했습니다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아버지를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저는 그것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몰랐습니다.

오히려 잔소리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부하라고 하면 싫었고, 일찍 들어오라고 하면 답답했습니다.

왜 그렇게 간섭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세상의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저도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어느새 60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을 떠나보낸 뒤에야 깨달았습니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 말이 없었는지.

어머니가 왜 그렇게 걱정이 많았는지.

왜 평생 자신보다 자식을 먼저 생각하며 살았는지.

그 모든 것을 말입니다.

오늘은 부모님을 떠나보낸 후에야 알게 된 이야기들을 적어보려 합니다.

아버지의 침묵 속에 숨어 있던 사랑

제 아버지는 말이 많지 않은 분이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루 종일 함께 있어도 대화가 몇 마디 안 될 정도였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일을 나가셨고, 밤늦게 돌아오셨습니다.

피곤한 얼굴로 밥을 드시고는 잠이 드셨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그런 아버지가 조금 무서웠습니다.

친구들 아버지처럼 다정하게 안아주거나 칭찬해 주는 모습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가 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으로 살아보니 그 침묵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가정을 책임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무거운 일이었습니다.

월급날이 오기 전까지 생활비를 걱정해야 했고.

아이들 학원비를 고민해야 했고.

집 대출금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가족 앞에서는 웃어야 했습니다.

저 역시 어느 순간 말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잠든 뒤에야 한숨을 쉬곤 했습니다.

그때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아버지도 그랬겠구나.

아버지도 힘들었겠구나.

하지만 가족이 걱정할까 봐 말하지 못했겠구나.

그제야 아버지의 침묵이 무관심이 아니라 책임감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며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좋은 옷은 입지 않으면서 자식 학비를 마련했고.

자신은 아끼면서 가족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그것이 아버지 세대의 사랑 방식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늦게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부모가 되어 보니 부모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혼 전에는 부모님의 걱정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아도 걱정하지 말라고 했고.

여행을 가도 전화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아들이 군대에 입대하던 날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겉으로는 웃었지만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다치지는 않을까.

밥은 잘 먹고 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군대 갈 때 어머니도 같은 마음이었겠구나.

하지만 저는 몰랐습니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아프면 밤새 잠을 못 자고.

늦게 들어오면 괜히 창밖을 바라보게 되고.

전화가 안 되면 별의별 걱정을 다 하게 됩니다.

부모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었습니다.

아이가 몇 살이 되든 늘 걱정되는 존재.

평생 마음 한구석에 품고 사는 존재.

그것이 자식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너만 건강하면 됐다."

젊을 때는 그 말이 너무 흔하게 들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압니다.

그 말 속에 얼마나 큰 사랑이 담겨 있었는지를 말입니다.

부모는 자신보다 자식을 먼저 생각합니다.

자신의 행복보다 자식의 행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 사랑을 저는 부모가 된 뒤에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떠나보낸 뒤에야 알게 된 후회와 감사

사람은 늘 시간이 많다고 착각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부모님은 언제까지나 곁에 계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전화도 짧게 했습니다.

나중에 해야지.

다음에 가야지.

그렇게 미루곤 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건강이 나빠졌고.

어느 날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셨고.

그리고 어느 날 제 곁을 떠나셨습니다.

장례식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왔던 날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집은 그대로인데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허전함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때 가장 많이 떠오른 것은 후회였습니다.

왜 더 자주 찾아뵙지 못했을까.

왜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왜 조금 더 시간을 내지 못했을까.

후회는 늘 늦게 찾아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후회보다 감사가 커졌습니다.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부모님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먹을 것을 아끼며 자식을 키웠고.

좋은 옷을 포기하며 학비를 마련했습니다.

힘든 세월을 견디며 가정을 지켜냈습니다.

그 사랑 덕분에 제가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저도 부모가 되어 그 사랑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세대는 바뀌지만 사랑은 이어집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또 부모가 되어 자신의 자식을 사랑합니다.

그것이 가족이라는 이름의 기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60대가 되고 보니 부모님 생각이 더 자주 납니다.

젊을 때는 미래를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 시간 속에는 늘 부모님이 계십니다.

아버지는 말없이 가족을 지켜주셨고.

어머니는 끝없는 사랑으로 품어주셨습니다.

저는 부모가 되고 나서야 부모를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부모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그 사랑의 크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혹시 지금 부모님이 곁에 계신다면 오늘 꼭 전화 한 통 해보시기 바랍니다.

"식사는 하셨어요?"

"건강은 괜찮으세요?"

그 짧은 말 한마디가 부모님께는 큰 행복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제 그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 후회가 남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감사합니다.

부모님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아버지를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해는 늦었지만,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깨달음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