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퇴직하기 전까지 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을 위해 일했고, 아이들을 키웠고, 집을 마련했고, 부모님을 모셨습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았지만 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고 믿었습니다.
오늘은 은퇴 후 처음 알았을때 이야기를 해 볼려고 요.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게 돌아오는 생활이 수십 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주말에는 밀린 잠을 자거나 집안일을 도왔습니다. 가끔 가족과 외식을 하기도 했고, 명절이면 친척들을 챙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남편이고 좋은 아버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퇴직 후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제가 정말 몰랐던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아내의 외로움이었습니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같은 인생을 살아오면서도.
저는 아내가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퇴직 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미안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은퇴 후에야 알게 된 아내의 이야기, 그리고 중년 부부로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늘 함께 산다고 생각했지만 함께하지는 못했습니다
젊은 시절 결혼을 했을 때만 해도 우리는 참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퇴근 후 함께 시장을 가고.
주말이면 버스를 타고 여행도 가고.
늦은 밤까지 미래를 이야기했습니다.
돈은 없었지만 웃음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태어나고 삶이 바빠지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저는 회사로 향했고.
아내는 가정으로 향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의 역할은 분명해졌습니다.
저는 돈을 벌었고.
아내는 집을 지켰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저는 가족을 위해 일했지만, 정작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부족했습니다.
퇴근 후 집에 오면 피곤하다는 말부터 했습니다.
주말이면 쉬고 싶었습니다.
아내는 하루 종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싶어 했지만 저는 TV를 보거나 잠을 잤습니다.
그런 날들이 수십 년 동안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퇴직을 했습니다.
출근하지 않는 첫 월요일.
처음에는 자유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광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하루 종일 집에 있었습니다.
제가 없던 시간에도 늘 혼자였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제가 출근하고.
집안일을 마친 뒤에도 대부분 혼자였습니다.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날보다 혼자 있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사실을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내는 늘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강한 척하고 있었던 것뿐이었습니다.
아내의 하루를 따라가 보니 알게 된 것들
퇴직 후 저는 자연스럽게 아내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어느 날은 장을 보러 함께 갔습니다.
또 어느 날은 카페에 따라갔습니다.
산책도 함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생각보다 말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정말 사소한 이야기까지도 말입니다.
마트에서 있었던 일.
이웃 이야기.
TV 프로그램 이야기.
손주 이야기.
예전에는 그런 이야기가 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수다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관심받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아내는 그런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아내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당신 퇴직하고 나서 제일 좋은 건 같이 점심 먹는 거야."
그 말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저는 별것 아닌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그 작은 시간이 큰 행복이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아이들이 독립한 이후 아내는 더욱 혼자였습니다.
집은 조용해졌고.
저는 여전히 바빴습니다.
아내는 하루 종일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는 날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저는 아내의 외로움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보려고 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다시 연애하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퇴직 후 가장 큰 변화는 시간입니다.
돈보다 귀한 것이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누구와 보내느냐가 중요했습니다.
저는 이제 아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아침 산책.
점심 식사.
카페 데이트.
시장 구경.
가끔 떠나는 1박 2일 여행.
이런 평범한 일상입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쌓이면서 우리 부부는 다시 가까워졌습니다.
젊은 시절의 사랑이 설렘이었다면 지금의 사랑은 이해입니다.
예전에는 아내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아내가 왜 서운해했는지 몰랐습니다.
지금은 이해가 됩니다.
우리는 수십 년을 함께 살았지만 서로를 완전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은퇴 후에야 비로소 서로를 다시 알아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여행을 갔을 때였습니다.
해질 무렵 바닷가를 걷고 있었습니다.
문득 아내 손을 잡았습니다.
아내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갑자기 왜 그래?"
저도 웃었습니다.
그리고 대답했습니다.
"이제라도 잘해주려고."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랑은 특별한 날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매일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손을 잡고 걷는 것.
그것이 진짜 사랑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은퇴 후 처음 알았습니다.
아내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혼자 보냈는지.
그리고 얼마나 오랫동안 제 관심을 기다렸는지를 말입니다.
돌이켜보면 미안한 마음도 많습니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직 함께 있고.
함께 웃을 수 있고.
함께 여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도 저처럼 중년의 남편이라면 오늘 아내에게 말을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어땠어?"
"커피 한잔 마실까?"
"같이 산책할래?"
그 한마디가 생각보다 큰 행복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은퇴 후에야 알았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가장 늦게 이해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시간을 조금씩 되찾아 가고 있습니다.
아내와 함께하는 인생 2막.
어쩌면 지금이 우리 부부의 두 번째 신혼인지도 모르겠습니다.